2017. 5. 8.
퍼스에 가면 맛있는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블로그를 검색하고 구글맵 리뷰를 읽으며 향기로운 카페 투어를 계획했다. 하지만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보니 그런 생각에는 몇 가지 오류가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맛있는 커피는 있지만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없다는 거리의 문제.
둘째, 대부분의맛있는 카페는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는 실로 충격적인 영업시간.
호주에서도 커피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무척 대중적인 기호 식품이다. 특히 실제 커피는 아닐지라도 카페마다 ‘베이비치노’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위한 작은 메뉴를 갖춘 것은 퍽 매력적이다. 저렴한 믹스커피와 테이크아웃 시장을 자랑하는한국보다 더 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에스프레소 샷을 베이스로 하는 커피를 즐기는 폭과 깊이는 더 넓고 깊다. 플랫 화이트라는 호주 특유의 커피 스타일도 있지 않은가! 물론 따듯한 카페라떼를 만들 때 우유거품을 조금만 넣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지는 말자, 사실 정말 똑같으니까.
정작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마지막 오류는 나의 길들여진 입맛에서 기인한다. 퍼스의 카페에는 시원한 아이스라떼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에서 익숙한 미국식의 아이스라떼와는 조금 다르다. 메뉴에서 ‘아이스커피’를시키면서 첨가되는 아이스크림은 빼달라고 주문하면 되지만, 돈은 제값 그대로 내고 마셔야 하니 이 방법은 맛있는 커피도 맛없게 느껴지게 만든다. 아이스 카페라떼가 메뉴에 있는 카페는 매우 드물고, 한국처럼 얼음 가득 시원하게 나오지도 않는다. 따듯한 커피보다 유독 비싼 것도 주문하는 내내 마음에 걸린다. 호주 마트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저렴한 대용량 얼음팩인데 이토록 가격이 비싼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 차가운 커피가 당길 때면 속 편하게 맥도날드로 간다. 메뉴판에 당당하게 적혀있는 아이스 카페라떼에서 마음 놓이고, 종종 뜨거운 것보다 아이스를 싸게 파는 지점을 만나면 속으로 맥날만세를 외친다. 한국에서도 신경 안쓰던 ‘맥세권’을 호주에 와서 찾게 될 줄이야... 이래서 먹는 아니 마시는 습관은 무섭다.
커피를 포함해 전세계 어디를 가도 최소한 유사한 맛의 ‘빅맥’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세계인에게 익숙한 맛이란 안식처를 제공해준 ‘맥도날드’는 대체 어떻게 이토록 성공적인 글로벌 프랜차이즈 왕국을 이룰 수 있었을까. 이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인 맥도날드는 맛과 시스템 그리고 나아가 정열적인 사업가 마인드까지 갖춘 완벽한 창업주였다는말인가.
맥도날드 창립 실화를 다룬 영화 <파운더>에서 그 작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 대답은 아니오다. 맥도날드 형제는 혁명적인 스피디 시스템(Speedee System)을 만들어낸 창의력 넘치는 창업가였지만 동시에 허술한 100개의 프랜차이즈보다는 근사한 하나의 식당이 가치 있다고 믿는 정직한 쉐프였다. 무조건적인 비용절감보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고자하는 약간 고리타분한 구석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맥도날드를 세계인의 식당으로 키운 실존 인물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은 반대로 탐욕스러운 사업 확장에 뜻이 있는 인물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모두 그의 독백으로 처리된 것은 그가 얼마나 강한 자기 확신을가진 인물이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남들은 은퇴를 시작한 나이인 52세에 맥도날드 형제를 만나 가맹사업을 성공시키고 나아가 형제에게서 맥도날드라는 이름을 통째로 사버린 차가운 자본주의의 화신을 배우 마이클 키튼의 얼굴은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야망은 늦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뜨거웠다.
한물간 세일즈맨에서 시작해 막대한 부와 성공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종반부까지 열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는 그의 모습은 폭주기관차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 변신의 과정을 마이클 키튼은 안정적인 연기로 소화하며 원맨쇼에 가까운 작품에서 왜 힘있는 배우를 기용해야 하는지 온몸으로 증명한다.
짧은 시간에 펼쳐지는 프랜차이즈의 성공을 지켜보는 것도 <파운더>가 가진 흥미로운 장점이다. 멋들어지게 재연한 미국의 1950년대도 흥미롭지만 군더더기 없이 시간의 흐름을 재연하는 몇몇 씬들은 깊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실제 사건을 다루는 만큼 많은 부분이 플래시백(재연)에 기댈 수 밖에 없었지만 최대한 다양하게 연출하고자 한 감독의 노력이 상당히 성공적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블라인드 사이드>, <세이빙 MR. 뱅크스> 등 실화 바탕의 잔잔한 휴먼드라마를 통해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존 리 행콕’ 감독의 욕심과 노하우가 채 2시간도 안되는 듀레이션 속에서 자칫 지루하기 쉬운 성공신화를 압축적으로 그려준다.
어딜 가든지 법원과 교회는 꼭 있더군요. 맥도날드가 미국의 새로운 교회가 되는 겁니다.
- 레이 크록의 대사 중-
그렇다면 이 빛나는 성공의 주인공인 레이 크록은 과연 존경받을 만한 인물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그의 끈기와 집요함에는 분명 본받을 부분이 있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모습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극중 레이는 맥도날드 형제에게 묻는다. 비지니스는 약육강식의 전쟁터이며, 물에 빠진 상대방의 입에 다가가 기꺼이 호스를 꽂아 넣을 수 있겠느냐고. 형인 맥 맥도날드(존 캐럴 린치)는 그렇게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답한다.
그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고 거기서 형제는 멈추었다. 이후 레이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왕국을 만들어 스스로 왕좌에 오른다. 물론 실제 레이는 맥도날드 형제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레이 크록은 평생 갖지 못했던 형제의 창의적인 능력에 대한 흠모가 자리했을 것이다. 0에서 1을 만든 맥도날드와 그 1을 100으로 키워낸 레이 크록. 세상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각자의 영역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맡은 자리에서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맥도날드 조리 시스템처럼 그들은 부여된 역할에 충실했고 그것이 지금의 맥도날드를 만들었다. 레이 크록의 빛나는 성공 앞에서 맥도날드 형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그저 주변인들의 좁은 시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빛나는 황금 아치의 이름은 지금도 분명 크록이 아니라 맥도날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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