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삶에 바치는 장송곡, 레미제라블
시카고에서 오리지널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감상한 것이 어느덧 7년전이다.
야트막하게 눈내리고 많이 추운 날 얇은 코트를 한장 걸치고 많이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봐야 카슈미르 출신 산양이 털갈이한 잉여털일 뿐인데
아마 캐시미어 16μ(미크론)이라고 시카고의 추위에 조금 방심했을 것이다.
400석은 족히 넘는 대극장에서 객관적으로 가장 후진자리에 앉아 여명처럼 울리는 노래를 들었다.
노랫소리가 내 자리까지 오면서 여기저기 부딪치고 깍이는 느낌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머리가 천장에 닿는 내 자리의 값어치는 왕복차비를 포함해서 18$ 정도였으니
솔직히 2시간 동안 서서보라고 해도 감지덕지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뮤지컬 레미지라블이 최고는 아니었다.
좋은 자리에서 비싼 돈내고 봤다면 내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18$ 지불한 내 충성심에서 직관 TOP 5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만큼 겨울을 불러오는 뮤지컬은 없다.
처음 떠났던 배낭여행의 기억이 계절을 돌아 코끝에 멤도는 것과 같달까.
겨울이 오고 눈이 날리면 그 묵직한 오케스트라 소리와 선동하는 노랫소리는
굴 까넣고 잘 담근 겉절이보다는 발효된 묵은지의 그것이다.
짧은 교환학생 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On My Own'이나 'Finale' 같은 곡들을
스크린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나같은 팬에게는 좋은 선물이다.
그닥 주목할 만한 연출이 없었다는 점이나,
기존 오리지널 뮤지컬의 감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여운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
나아가 뮤지컬 라이브에 비해 극장음향이 주는 한계는 분명 아쉽지만
'앤 헤서웨이'의 한방은 아쉬움을 다스려 주기 충분하다.
뮤지컬 현장에서 이동식 무대연출과 어우러지는 점진적인 떼창의 효과는 엄청나다.
사실 레미제라블 넘버들의 백미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영화, 연극, 뮤지컬, 문학을 넘나드는 리메이크와 리부트 열풍속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영화 <레미제라블> 그리고
문학작품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엇이 더 뛰어나다 아니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레미제라블>의 감동이 무조건적으로
빅토르 위고의 원작 찬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다.
뿌리가 된 그의 원작은 당연히 힘있고 위대한 작품이지만
영화 <레미제라블>이 줄 수 있는 것은 소설원작에 대한 호기심과 피상적인 이해 정도일 뿐이다.
원작의 감동과 가치는 철저하게 소설을 읽어 넘기는 고된'수고'를 감내 할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원작은 철저하게 뮤지컬 '레미제라블'이다.
여기에는 명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와 작곡가 미셸 쇤베르크의 수훈이 더해져있다.
지나치게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그 차이를 인식하고 볼 때
세상 모든 '레미제라블'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도 제대로 안읽은 원작 소설을 읽자는 반성문으로 끝나는 글이지만,
오랜 숙제를 하나 끝낸 기분이다.
원작의 위치와 명성을 고려할 때 언젠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영화였고
팬으로서의 기대 속에서 그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감사로 감상이 조금 후해졌지만
아마 뮤지컬 작품의 팬이 아니었다면 별3개가 딱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몇몇 넘버들은 가끔 찾아 들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며...
"물론 뮤지컬버전으로 들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