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eadme 2018. 3. 27. 16:48

 

2016. 10. 2. 0:52

 

한 달이나 시간이 흘렀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퍼스에 도착하자마자 개통했던 유심을 충전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치즈 유통기한을 확인하다가 달력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되도록 많이 기록하고 싶었지만 빠진 것들이 많다. 욕심낸다고 모두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이 자리에 짧게나마 남겨보려 한다.


우리는 그 사이 퍼스 '한인의 날 행사'와 퍼스 '로얄쇼'에 다녀왔다. 카페 투어도 계속하고 있지만 길게 이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 물론 이제 차도 샀고 내심 곧 편안하게 정리할 시간이 생기리라 기대하고 있다.


아직 여기서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사이 불미스러운 일도 하나 있었다. 우리는 마음을 많이 다쳤고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는 이 얘기를 쓸 준비와 시간이 주어지리라 생각한다. 그 어렵고 힘든 와중에 나보다 용기있게 버텨준 그녀의 당당함과 어른스러움이 고맙다. 더불어 로얄쇼에서 그녀를 치유해준 개, 돼지, 소, 양, 라마, 알파카, 염소, 닭, 낙타, 타조 등등 때때로 혹은 항상 사람보다 인간적이었던 동물들의 크고 깊은 눈에도 감사한다.


지난 9월의 퍼스는 우리에게 유난히 추웠다. 길고 뜨거웠던 한국의 여름에 지쳐있던 우리는 그저 활동하기 좋을거란 작은 기대로 짐을 줄였다. 지금도 여기는 밤에는 무섭게 비가 내리고 새벽녘에는 바람이 얇은 창문을 흔든다. 오자마자 서핑보드를 차에 싣고 바닷가를 맨발로 뛰어다닐거란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지구는 그렇게 하나인 것인지, 한국의 여름이 유독 지리했듯 여기의 겨울도 예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지난 한 달 사이 우리는 쉐어 하우스를 잡았고, 자동차를 샀고, 스무개 정도의 카페를 다녔으며, 매일 삼시세끼를 함께 만들어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밥을 해 먹는다는 행위가 어찌나 즐겁고도 고단한지 아직 일도 안하는데 장보고 밥 짓다가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식재료가 싸고 신선해 음식을 준비하는 힘을 북돋아 준다는 점이 다행이다.


우린 여기 와서도 여전히 가끔 싸우고, 답답해하고 싫어하다가 침대에 누워 손을 잡고 잠든다. 달라진 모습은 하나도 없다. 조막글로나마 이렇게 생각을 적고 남길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는 사실이 고맙다.


한국이 추워지는 만큼 우리가 있는 남반구에도 여름은 성큼 다가 올 것이다. 이 여름이 기대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여름을 청춘의 시간이라 말하고, 우리는 올 해 두 번의 여름을 함께 보낸다. 즐겁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