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장면/영화 보다

우주의 기운을 느끼자, 왕의 남자

5eadme 2018. 3. 27. 22:18

 

2016. 11. 19

 

최순실 사건으로 한국이 시끄럽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일 때, 사실 영화 보는 일은 영 흥이 나지 않는다. 분노하다가도 어이없어 웃게 되는 이 웃픈 사태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퍼스에 도착하면서 한국 소식과는 잠시 거리를 두겠다던 다짐도 힘을 잃었다. 

 

외신들은 이번 스캔들을 전하며 사이비 교주(Cult Leader), 무속인(Fortune Teller)이 대한민국 국정을 좌지우지 했다고 적는다. 반박할 말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우면서, 새로운 영어 단어를 배워가는 점을 고마워해야 하나 문득 멍청한 생각이 든다. 모든 사건에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들 한다. 누군가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가 가진 단 하나의 밝은 면은 그것이 밖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문득 이 사태가 드러나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해보니 제법 무서운 생각이 든다.

 

새로운 영화가 별로 끌리지 않을 때는 종종 지난 영화들을 들추어 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떠오른 영화가 있으니 바로 <왕의 남자>다. 너무 많이 다루어진 소재라서 이제는 좀 그만하자는 우려와 함께 나왔던 이 영화는 조선시대 폭군 연산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생각보다 나쁜 왕은 아니었다는 ‘승자의 역사’ 운운하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그에 대한 기록이 철저하게 격하되어 있다 해도 최소한 성군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에서 적어도 ‘잃어버린 7시간’같은 기묘한 미스테리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단물 다 빠진 이야기를 굳이 새로운 영화로 만든 이준익 감독의 생각이 옳았다. 역사는 지금 여기서 다시 반복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산(정진영)은 궁에 광대들을 불러놓고 놀이판을 벌인다. 그 놀이는 자신의 아픔과 억울하게 죽은 어미를 위로하고자 함이니 굿판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생모의 한을 풀고자 했던 그의 개인사에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만 연산군은 정치가로서의 자신과 아들로서의 자신을 정확하게 구분 짓지는 못했다. 당대에 그것은 아마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와 유사한 ‘인간적인 연민’을 일부 지지기반으로 당선된 대통령도 광대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의혹이 불거진 이후 사과의 말과 함께 그것은 본래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을 보듬기 위함이었다는 말을 작게 덧붙였다. 영화와 현실이 묘하게 겹쳐 보일 때 느껴지는 쾌감이 여기에는 별로 없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은 실패했고, 반복되는 아픈 역사는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모았다.

 

 

“제가 광대들을 궁에 들인 건 간악한 중신들을 걷어내어

마마께서 세상을 바로 보시도록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하온데 마마께서는 그중 한 놈에게 눈이 멀어...”

 

- 영화 <왕의 남자> 중 처선의 대사 -

 

 

글을 쓰는 와중에 그동안 몸 담았던 회사의 임원 인사에도 청와대가 관여했다는 기사가 오르내린다. 그저 소문으로 흘러 들었던 이야기가 기사의 형태로 사실이 되어 돌아오는 상황이 당황스럽다. 회사가 제작한 코미디 프로에서 VIP를 풍자한 것이 청와대를 언짢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진짜 누구의 뜻이었지 아마도 알 수 없겠지만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포용과 이해가 없는 곳에서 유머가 갈 수 있는 방향은 하나 뿐이다.

 

이후 해당 프로그램이 저속한 섹드립으로 넘쳐난다며 시청자들에게 비판 받은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고여있는 물이 썩어 가듯, 풍자와 해학의 대상에서 도망쳐 성역화 된 정치는 채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구린 속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난 백악관 핼러윈 파티에서 한 어린이가 레임덕(절름발이 오리) 분장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웃겼다는 소식이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이야기처럼 낯설다.

 

말의 출처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군대에서는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장교를 최악의 지휘관으로 꼽는다고 한다. 멍청하면서 게으른 군인은 적어도 단순한 작전을 맡기기에는 적합하다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의혹들의 수를 헤아릴 때 그들이 어찌나 부지런하게 부패했는지 쌩뚱맞은 부분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문제의 태블릿 PC는 대충 버리고 간 그녀는 검찰 출석에 맞춰 프라다를 신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대쪽같은 마음으로 게으른 미덕조차 발휘하지 못한 그 근면성실함 앞에서는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영화 <왕의 남자>는 공길(이준기)과 장님이 된 장생(감우성)의 줄타기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흔들리는 외줄 위에 올라서서 공길은 울먹이며 말한다.

 

 

“네놈이 두 눈이 멀어 뵈는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 놨구나”

 

 

‘아사리판’은 몹시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엉망인 상태를 일컫는 우리말이라고 한다. 영화를 다시 보니 문득 이 말이 단순히 장생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냐고? 전체 영화를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오늘 저녁 이토록 트렌디한 옛날 영화를 다시 보며 그 기운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경험해보니,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것 보다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