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장면/영화 보다

달콤 씁쓸한 신데렐라 스토리, 미 비포 유

5eadme 2018. 3. 28. 21:56

 

2017. 3. 3.

 

불투명한 미래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자는 뜻의 욜로(YOLO)가 대세라고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말이라고 하니 누가 만들었는지 꽤나 입에 착 감기는 단어다.

 

나 역시 아직까지 두 번 산 사람은 본적이 없고, 혹 있다해도 내가 그 사람은 아닐 것이다. 스무살의 나와 비교해 내 몸의 알콜분해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하룻밤을 무리하면 이틀을 해롱거린다. 생물학적 성장의 정점인 서른을 갓 넘어선 나는 분명 자라지 않고 늙어가기 시작했다. 또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지구도 언제가 사라질 것이며, 태양도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 이런 아득한 진실을 앞에 두고 생각하면 인생에 대한 답도 어느정도 나와있는 것 같다. 바야흐로 ‘오늘만 사는’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 한번뿐인 인생을 아낌없이 즐기던 남자가 있다. 지조 높은 가문의 자제로 부와 능력, 외모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특급 금수저라 할 수 있는 윌(샘 클래플린)의 삶은 문자 그대로 완벽해 보인다. 당연하게 묻어나는 약간의 오만함도 이성들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였음이 분명하다. 본인 역시 스스로의 삶을 너무나 사랑했다고 말한다. 

 

누구라도 윌과 같은 삶을 산다면 행복이란 말을 입에 담기 수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나 감독이란 사람들은 절정의 순간에 주인공을 절망으로 빠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 끝은 보통 고난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드라마나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자는 가슴 찡한 교훈으로 정리된다. 

 

영화의 전개는 식상하리만치 예상과 맞아 떨어진다. 급작스런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를 얻게 된 윌은 고향으로 돌아오고, 일자리를 찾던 흙수저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그의 간병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장애를 얻은 부잣집 도련님과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인.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만 <왕좌의 게임> 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에밀리아 클라크의 명품 표정연기와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이 그 뻔함을 조금 상쇄시켜 준다. 개별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녀의 눈썹과 얼굴 근육들은 조금 다른 의미로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예상되는 전개와 전형적인 캐릭터들 속에서도 영화가 크게 지루하지 않은 것은 분명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사랑스러움 덕분일 것이다.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는 훌륭한 원작 덕분일까? 혹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가 될만한 요소도 일부 가지고 있다. 그것이 대부분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직접 전달되는 ‘메시지’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크지만, 때론 쉬운 방법이 가장 잘 먹히는 법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 윌의 위험한 결심을 돌리려는 여주인공의 노력은 그 자체로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전해준다. 마치 퍼스를 닮은 듯한 영국 웨일즈 지방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와 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광도 눈을 즐겁게 해준다. 돈이면 다 된다!는 힘 빠지는 묘사들이 마음에 걸리지만 절반의 해피엔딩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장치였다고 합리화 해본다. 이는 모든 신데렐라 스토리가 가진 풀기 어려운 숙제다.

 

한 번뿐인 인생 소중하게! 라는 따듯한 메시지로 시작해서, 결국 인생은 로또 한 방! 으로 달려나가는 결말이 씁쓸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완전한 종착지는 아니니 아쉬워하지 말자. 영화의 마지막에 찝찝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애프터 유>를 읽어보자. 예상과 달리(?)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루의 미래가 마음에 걸리겠지만, 작가가 전하고 싶던 진짜 메시지는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나를 불편하게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일시적인 처방이다. 그런 종류의 행복은 길지도 않고, 기억에 오래 남지도 못한다. 하루의 행복은 끝내 내일의 불행을 감추지 못하는 법이다. 여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던 윌이 자신의 선택을 굽히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대담하게 살아요, 끝까지 밀어붙이고, 안주하지 말아요!"

 

- 윌의 대사 중 -

 

단지 ‘존재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식물이 되어버린 윌의 몸과 달리 그의 머리 속은 여전히 다이빙을 하고 보드를 즐기며 파리를 거닐고 있다. 거기에는 바쁜 업무에 치이던 힘든 일상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아무 문제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문제와 더불어 그의 청춘은 화려하게 꽃 피웠다. 윌은 삶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결국 그의 선택은 저 나름대로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스트랜딩(stranding)이란 단어로 알려진 것처럼, 심각한 부상을 당한 고래는 때로 육지로 올라와 마지막을 기다린다고 한다. 나는 오늘을 얼마나 동물같이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바다로 나가야겠다. 아직 내일을 꿈꿀 수 있다면 지금 선 자리가 어디건 살아갈만한 이유가 있다. 분명 ‘살아있음’이란 끊임없이 증명해야하는 종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