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근원을 묻다, 겟 아웃
2017. 6. 5.
호주에 와서 더욱 느끼는 중이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과 유행은 요즘 한국을 따라갈 만한 곳이 없다.
시차를 감안한 편의상의 ‘세계 최초’라 할지라도 대형 블록버스터들의 프리미어 상영은 이제 별 이야깃거리도 못되고, 내한에 소극적이었던 할리우드 감독, 배우들의 홍보를 위한 발걸음도 부쩍 많아졌다. 중국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투어 중에 거쳐갈 뿐이라는 비극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진짜 이유야 어찌되었건 영화팬들에게는 흥분되는 변화임이 분명하다.
주목받는 영화시장이 된 계기에는 즐길거리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국내의 현실도 부분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퍼스에 와서 살아 보니 이는 꽤 확실한 팩트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가활동이라는 장점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정보공유와 피드백에 적극적인 젊은 영화팬들의 확대와 한국의 빠른 인터넷 환경이야말로 변화를 이끌어 낸 핵심적인 동력이다.
때때로 이렇게 유행에 민감한 관객들의 힘이 모이면 죽어가는 영화를 되살려 내기도 한다. 여기서 죽어간다는 말은 극장에 아예 걸리지 못할 뻔했거나 형식적인 개봉에 그친 영화들을 의미한다. 결국 영화를 수입해오는 업자들의 눈에는 별로 신통치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영화가 기대이상의 흥행 몰이와 함께 큰 관심과 성과를 냈을 경우는 다시 살려냈다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각각의 사례들이 서로 다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멀게는 <원스>부터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 그리고 오늘 살펴볼 <겟 아웃>까지 모두 관객들의 호응으로 기존의 기대와 편견을 뛰어넘어 이슈가 된 화제작이다.
처음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명에 가깝거나 흥행과는 인연이 없는 감독 그리고 배우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겟 아웃>은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주연배우들의 얼굴은 선입견 없이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자의식이 남아있는 채로 생면부지의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는 영화의 주된 공포와 무명의 얼굴들은 묘한 시너지를 낸다. 특히 눈만 보고 뽑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흑인배우들의 깊이 있는 눈빛 연기가 일품이다. 흔들리는 커다란 눈동자는 ‘복수의 자의식’이라는 글로 표현하기에도 벅찬 복잡한 내면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살아있는 인간의 두뇌를 이식한다는 중심 아이디어는 오래전 한국영화 <더 게임(2008)>에서도 시도된 바 있는 스릴러 단골 소재지만 <겟 아웃> 에서는 인종이라는 양념이 뿌려지면서 훨씬 자극적인 아이템으로 되살아났다.
전체적으로 좀 지나친 찬사라는 느낌을 감추기 힘들지만, 분명 깊이 있는 연출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은 조던 필레 감독은 그 자신이 영화를 통해 얼굴을 알렸던 유명 코미디언이기도 하다. 공포영화 감독과 개그맨이라는 부분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겟 아웃>은 높은 긴장감과 함께 꽤나 훌륭한 유머 감각을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그 유머의 중심에 자리한 인물 로드(릴렐 호워리)의 거친 입담은 지루함이 느껴지는 포인트마다 시기적절하게 또 시원하게 웃겨준다. 공포와 서스펜스라는 다른 장점에 가려 빛이 약할 뿐이다.
결정적으로 <겟 아웃>이 사람들의 지지를 업고 개봉까지 갈 수 있었던 힘은 그 경쾌한 속도감과 깔끔하고 인상적인 마무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빈틈없는 편집 덕분에 영화를 멈추고 생각한다면 던질 수 있는 많은 질문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주인공 크리스(다니엘 칼루야)가 겪은 끔찍한 일들을 마치 기분 나쁜 지난밤 꿈처럼 정리해버린다.
극장에 있는 동안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서스펜스가 연출자의 순수한 의도였던 것일까? 감독은 영화 속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관객이 고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영화는 약간의 현실성을 포기하는 대신 장르적인 강점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어색함을 감추는 전략으로 빛을 발한다. 관객들에게 이미 학습된 ‘반전 스릴러’라는 포장지는 효과적으로 불필요한 질문들을 제거한다. 덕분에 다른 장르였다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결말도 <겟 아웃>에서는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이미 언급했듯이 감상 후의 여운과 질문이 필수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쓸데없는 상상이 하나 떠오른다. 다른 이의 몸을 빌어 생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건 온전히 내 삶의 연장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삶일까.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릴지 모른다.
감독의 생각을 살짝 살펴보면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건강한 육체로 다시 태어난 인물들의 어딘가 어색한 모습과 부작용들이 그 증거다.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이전까지의 자신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탈출하라(GET OUT)는 영화의 주문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일 때, 가장 안전하다는 신호처럼 들린다.
영화는 과도하게 치우친 편견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그 선입견들을 모두 다 지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기에 도망치지 않고 머물러야 하는 자리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저마다 ‘자기’ 안에 갇혀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