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장면/영화 보다

불공정 게임의 비열한 승자들 <빅쇼트> 삼성증권 사태를 보며...

5eadme 2018. 4. 9. 02:59


지난 4월 6일(금) 아침 삼성증권이 대박사건을 터트렸다.

세상일은 좋은일과 / 나쁜일로 나뉜다고 배웠는데 현재까지는 후자인듯 보인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우리사주[각주:1] 배당금 지급일이었던 당일 전산상 실수로 지급단위가 '원'이 아닌 '주'로 입력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1,000원을 받기로 되어있던 직원이라면 대신 1,000주의 삼성증권 주식이 계좌에 입금되었고... 개꿀!

뛰어난 역량만큼이나 발빠른 일부 직원들께서 주식을 대거 내다팔면서 일시적인 주가 대폭락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시장가치로 100조원이 넘는 주식이 일시에 발행되었다고하니, 아름다운 4대강 사업을 다섯 번이나 할 수 있는 돈이 클릭 실수 한번으로 생겨난것이다. (갓재용 회장은 이토록 아름다운 창조경제 전략을 왜 503님과의 만남에서 밝히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일단 사건의 전개 자체도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지만,

비금융전문가인 내가 봐도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첫째, 배당금 지급이라면 최소 수차례 결재라인을 거쳐야 정상인데 지급단위 실수가 걸러지지 않았다?

둘째, 설사 단위가 틀렸다 하더라도 112조가량의 주식이 한 증권사 시스템에서 즉시 발행되고 거래가 된다?

셋째, 거래가 체결 된다 쳐도 증권사 직원이 수십억 상당의 주식이 자기 계좌에 들어왔다고 빛의 속도로 팔아치운다?


현재 시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정은 각각


첫째, 삼성증권은 수평적이고 선진적인 조직문화 덕분에 결재라인 없어요!

둘째, 북한 애들이 시스템을 해킹해놨어요, 북한 최고... 해킹 무서워!

셋째, 삼성증권에 입사하려면 인생을 거는 대범함과 순발력 그리고 밀항할 용기 정도는 필수!


아무리 억지 가정이지만 쓰면서도 부끄러워지는 답변들인지라... 앞으로 밝혀질 진짜 정황이 궁금하다.


아무튼, 이런 와중에도 하는 짓은 영화 보는 일이다 보니 겸사겸사 <빅쇼트>를 다시 보았다.

영어 원제인 Big Short가 '공매도 대박'을 뜻하는 것처럼, 상황은 다르지만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영화는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경구로 시작한다.


It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당신이 곤경에 처하는 것은 무지해서가 아니다.

It'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t so.

확실히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 Mark Twain -


억지스럽게 현재 상황에 적용해보면, 

무너진 금융 시스템의 카오스에서 패배자(개인투자자)들이 돈을 잃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삶이 불공정한 것은 당연하다. 각자의 출발선이 다른 것은 불평한다고 어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인간이 만든 시스템만큼은 공정해야 한다. 우리가 부정취업에 분노하고 군대 특혜에 화를 토하는 이유는 정의로워야 하는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기본 질서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도박장인 카지노에서도 공평한 게임의 규칙이 적용된다. 이번 사태는 당신이 만약 개인투자자였다면, 카지노 칩이 무제한인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서 포커를 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격이다. 잃은 돈을 돌려받을 길은 전무하니 사람들은 테이블이라도 뒤집어 엎을 기세다.


칩이 무한인 플레이어를 이길 수 없듯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근거(예탁)없는 '유령 주식 발행'이 무한정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공매도 시스템과 맞물려 시장의 공정성을 크게 저해하는 장치로 활용되어 왔다는 확신을 주었고, 분노한 개인들은 청와대 '공매도 금지 청원' 쪽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정작 신문기사들은 '배당 착오'와 '직원 실수' 그리고 '모럴 해저드'를 강조하며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판을 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뭐 한 낱 어리숙한 개인이 언론사들의 내부 사정까지 알 수는 없다. 정작 진행의 열쇠를 쥐고있는 김기식 금감원장조차 외유성 출장논란으로 자기 똥도 못 닦는 형편인지라... 일단 월요일 주식시장이 개장하면 이번 사태는 더욱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에서 남과 다른 혜안으로 한 몫 거하게 잡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현재 사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은행, 정부, 교육, 종교, 식량 심지어 야구까지도요. 지금 제 기분이 언짢은 것은 사기가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은 아닙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사기는 결코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기는 결국 밝혀지고 실패합니다. 왜 모두 그걸 잊은 거죠? 저는 우리가 이렇게 멍청한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슬픕니다. 월가의 전문가들이 틀렸다는 사실이 조금 웃기긴 합니다만, 마지막에 대가를 치르는 것은 결국 일반 국민들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습니다."


처음부터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사고로 사람들은 착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을 공정하게 바꾸어 나가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만이 멍청하게 살지 않는 방법이다. 다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일반 국민들의 몫이다. 성공한다 한들 그동안의 손실은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 때문일까? 기분 좋은 밤은 아니다.

  1. 근로자들이 자기 회사 주식을 매입해 보유하도록 하는 제도로 임직원이 주주로서 배당금 등 회사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