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좋은 영화라면,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영화사에서 선두 그룹을 차지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장르적 쾌감을 기준으로 한다면 237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과 감정을 배제한 듯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영화의 시선은 '재미'라는 요소와 이별하기로 작정한 듯 느껴진다. 이야기는 파편처럼 흩어져있고 인물들의 내면은 고립된 체 부유하며, 사건은 뜬금없다. 할리우드의 문법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지루한 이 영화는 그렇게 사람들의 실제 인생과 닮아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영화적이지 않아서 진정한 영화가 되었다.
파편화된 이야기는 우리가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이고, 인간은 서로에게 타자라는 지루한 명제는 영원하다. 사고란 언제나 뜬금없기에 충격적이고 그 배경의 진실은 쉽게 드러나는 법이 없다. 대만 뉴웨이브가 가진 리얼리즘 미학은 현실의 혼란과 무질서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굳이 따지자면 그 정점으로 탄생했다. 시대의 혼돈을 개인의 아픔과 가족사에 녹여내는 방식이 영화가 역사를 투영하는 정석이라면, 본 작품은 교과서로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연스럽다고? 진짜랑 가짜를 구분할 줄도 모르면서 영화를 찍는다고?
너 뭘 찍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해?
- 영화 속에서 촬영장 감독에게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분명 두 번 보아야 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전말을 알고나면 감동이 사라지는 일반적인 감상과 달리, 이 작품은 두 번 볼 때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는 걸작이다. 인물의 내면 묘사를 극도로 생략하고 있기에(이러한 설정 자체가 당시 대만인들의 정서를 닮아있다) 이야기의 배후를 알고 나면 모든 대사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왜 저렇게 하는 짓들이 답답할까?" 욕하다가, "아이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랬을까?"로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다. 일면 극단적인 카메라의 거리 두기조차 두 번째 감상에서는 맘 놓고 울 수 있는 물리적 거리를 위한 배려로 느껴진다.
영화 속 샤오쓰(장첸)의 삶만큼이나 작품 자체도 우여곡절이 많아 1991년 나온 작품이 긴 시간을 돌아 2017년 정식 개봉을 하였으니 감개무량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원본 네거티브 발굴과 디지털 복원이 잘 끝난 덕에 앞으로도 종종 작은 영화제들을 통해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다만 두 번 이상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런 영화를 계속 보다 보면, 팔리지도 않을 영화들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멈추지 않는다. 그건 참 지금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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