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이병헌의 영화를 좋아한다.
굳이 영화인이라는 꾸밈을 붙인 것은 배우 이병헌과 이름이 겹치기 때문이 아니다. 연출을 넘어 각본과 각색에 특출난 그의 재능에도 방점이 찍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강형철 감독의 <과속스캔들> 각색으로 필모를 시작해 <써니>, <타짜2>, <오늘의 연애>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상업영화에 그는 맛깔나는 양념을 뿌려주었다. 그 모든 경험과 재능 그리고 기회가 만나 <스물>에서는 연출가로도 하나의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며 참 많이 웃었고, 많은 이들도 같이 웃었다.
다만 #미투운동과 더불어 여성주의에 대한 대중의 긴장이 극에 달한 오늘 <바람 바람 바람>같은 영화는 조금 위태로워 보인다. 전작인 <스물>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차이가 있다면 2014년과 지금은 예민함이 다르다. 물론 이 짧은 후기에서 하나의 잣대로 영화를 재단하고 선을 긋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는 이번에도 영화를 보며 많이 웃었다. 비교하자면 <스물>에서 만큼은 아닐 뿐이다.
보통 자전적인 이야기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결국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잘 아는 것을 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일까?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녹아있다고 알려진 <스물>은 완전하게 그 시대와 세대를 겪은 이의 감성이 녹아 나오는 작품이었다. 반면 <바람 바람 바람>은 아직 소화가 덜 끝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물론 불륜 영화를 잘 찍기 위해 더 많은 불륜을 경험해야 한다고 쏘아붙인다면 철 지난 예술가 병에 걸린 환자일 뿐이다. <희망에 빠진 남자들(2011)>이라는 체코 원작이 있었고, 그것을 한국 상황에 맞춰 풀어낸 작품이라는 부분을 고려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말맛에만 집착하는 과잉은 분명 몰입을 떨어트리고 어색한 '사이'를 만들어 낸다. 이성민, 신하균 같은 뛰어난 배우들도 붕 뜨는 순간을 모두 채우지는 못한다. 송지효와 이엘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동안 보여주었던 모습과 다름 아니다. 사이가 빈 듯한 편집과 뜬금없는 전개 앞에서 '뜨악'은 과하지만 '으잉'정도라면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처음부터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혼란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추기 어렵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나는 <바람 바람 바람>을 보며 많이 웃었다. 생각 없이 영화를 한 편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바람처럼 사라져도 상관없다면 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줄 것이다. 다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머릿속에 남기고 싶은 날이라면, IPTV에서 <바람(2009)>을 보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제목은 1/3뿐이지만 여운은 좀 더 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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