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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삶을 또 다시, 컨택트

특별한 장면/영화 보다

by 5eadme 2018. 3. 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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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스틸컷

 

2017. 3. 20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촌스럽게 직역한 타이틀과 시대를 역행하는 포스터로 국내 15만 관객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받았던 영화 <시카리오> ‘드니 뵐뇌브’ 감독의 신작 <컨택트>에서 그 답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이번 영화의 흥행성적도 그다지 신통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유독 힘을 못쓰는 SF라는 장르적 한계도 있었겠지만 통상 SF와 1+1으로 붙어가는 액션이 없다. 화려한 최신 무기들의 물량공세와 외계인 싹쓸이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적잖이 실망하며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눈길을 사로잡는 포스터의 웅장한 우주선이 고작 한번 누웠다가 일어나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될 때면 이미 극장문을 나서야한다. 문자 그대로 표정도 말도 없는 외계인 ‘헵타포드’의 등장 역시 침략자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거의 돌부처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외계인은 심지어 말도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12개의 외계 우주선, 이 파격적인 배경을 앞에 두고 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그들이 “왜 지구에 찾아왔는가?”를 추적한다.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힘을 못썼지만 <컨택트>는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꽤 괄목한 만한 성과를 얻었다. 실제 수상은 ‘음향편집상’ 하나에 그쳤지만, 이 심각하게 건조한 SF영화가 지난 1년간 나온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라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꽤나 자신한다.

 

유례없는 작품상 번복 해프닝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문라이트>와 <라라랜드>가 이번 아카데미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반이민과 소수자 탄압의 아이콘인 트럼프 대통령과 할리우드에 숨어있는 백인 우월주의를 뜻하는 화이트 오스카 논란이 만나면서 정작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정치적 이슈가 한껏 불타오른 시상식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작품상 수상작인 <문라이트>를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컨택트>를 보고 난 뒤 마음이 바뀌었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 하는 한국의 상황과 ‘미지와의 조우’를 품고있는 이 영화의 배경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약간 억지스럽다. 그래도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을 만나고,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는 것은 가장 두근거리는 일이 아닌가.

 

주먹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듯한 ‘헵타포드’의 외모는 심심하다. 딱히 얼굴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특정하기도 어렵다. 외국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손짓 발짓 섞어가며 하고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겠지만 상대가 손도 발도 없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 커뮤니케이션에서 말보다 중요하다는 표정, 억양, 소리의 높낮이, 몸짓 등 그들에게는 비언어적 의사표현이 전무하다. 굳이 정의한다면 그들은 말하기 보다는 글을 쓰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극중 언어학자의 역할을 맞아 외계인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했던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갓난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헵타포드와 교감한다. 영어를 잘하려면 생각도 영어로 해야한다는 말처럼, 언어천재인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생각의 구조를 습득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처럼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컨택트>는 영화 속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시작과 끝이 모호한 원의 형태를 가진 헵타포드어(語)처럼 영화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과거로만 보였던 사실들이 ‘미래’로 밝혀지고, 현재로 다가와 말을 거는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힘있는 순간이다. “너가 없었던 시간 속에도 사실은 너가 있었다”는 선문답 같은 루이스의 초반 독백도 종반부에 이르면 질문이 스스로 해소되며 지적인 쾌감으로 다가온다. SF라는 장르적 외피를 넘어 아름답다는 꾸밈이 이 영화에 어울리는 이유는 결국 모든 새로운 것들을 만날 때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가 없었던 시간 속에도 사실은 너가 있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 그럼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까? 

 

루이스는 우리가 모두 시간의 순서에 묶여있다고 말한다. 헵타포드는 미래를 알고 인간을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된 미래가 현실에 대한 강한 의지를 깎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오늘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현재 뿐이다. 때론 그것이 결정된 과거를, 나아가 미래를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는 ‘오늘’과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 ‘오늘’이 만날 때 역사는 둥글게 그리고 매끄럽게 흘러갈 것이다. 루이스의 정신은 미래를 넘나들었지만 그녀의 몸은 항상 현재에 묶여있었다. 

 

작년말부터 시끄럽던 한국의 사건사고들이 일단락 되는 듯하다. 영화 속 맞닿아 있는 시간처럼 끝은 결국 시작이다. 헌재가 ‘현재’를 결정했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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