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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안부를 묻다, 라라랜드

특별한 장면/영화 보다

by 5eadme 2018. 3. 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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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탭댄스

 

2017. 2. 26

 

지금 가장 이슈가 되는 영화를 뽑는다면 당연 <라라랜드>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예정된 화제작이었던 <로그 원>과 그 관심이 다소 국지적인 <너의 이름은>은 잠시 미뤄두자. 새해의 시작부터 골든 글로브를 휩쓴 것은 물론이고 최근 공개된 오스카 노미네이트 결과를 보면 2017년 가장 핫한 영화는 <라라랜드>로 이미 정해진 느낌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14개 부문 진출. 이는 그 위대한 <타이타닉>과 동률인 역대 최다 기록이라고 하니, 생애 2번째 상업영화로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연출력이 새삼 놀랍다. 올해로 32살인 85년생, 하버드를 졸업한 천재 감독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은 그의 유일한 약점은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뿐이라는 억지스러운 결론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영화는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가 흐르는 뮤지컬이기 때문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편집이 주는 속도감과 자연광과 조명의 기막힌 활용, 눈을 매혹하는 원색적인 색감이 몰입을 끌어 올린다. 

 

특히 전작인 <위플래쉬>를 통해 보여줬듯 음악에 대한 부분은 빈틈이 없다. 사랑을 했던 혹은 사랑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가슴이 먹먹할 수줍은 순간과 폭발적인 판타지 양쪽 모두 빼놓지 않는 성실함도 일품이다. 특히 남녀의 사랑이라는 심플한 시작에서부터 영화 그 자체에 대한 헌사로까지 나아가는 패기는 결코 헛된 야망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스크린을 꽉 채우는 ‘엠마 스톤’의 큰 눈과 시원한 미소도 극 중 로맨스의 완성도를 높여준 일등 공신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녀가 골든 글러브에 이어 과연 생애 첫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사랑스럽기만 해 보이는 <라라랜드>는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구석도 가지고 있다. 지나간 사랑을 바라 볼 때 스치는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감독은 전통적이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연출해 낸다. 마음 한 켠이 뜨거워지는 혹은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엔딩은 이 영화가 단순한 뮤지컬 드라마 그 이상이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청춘들의 ‘꿈과 사랑’이라는 단순 식상한 주제를 가진 영화에 이토록 새로운 찬사가 쏟아진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그 힘겨운 여정을 거쳐가는 여행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청춘들은 한 겨울에도 수영복 차림으로 파티를 즐기고 꽉 막힌 도로를 배경으로 흥겨운 춤판을 벌인다. 당연하게도 퍼스의 겨울이 그러하듯 LA의 겨울도 결코 따듯하지 않다. 수영복은 가당치도 않다. 결국 시간과 계절의 변화는 두 주인공의 심리상태의 거울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모든 것이 달라진 주인공의 모습과 달리 계절은 공통적으로 ‘겨울’이라는 점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피아니스트인 세바스찬은 ‘재즈’를 사랑한다. 영화 속에서 키이스(존 레전드)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상기 되듯 그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그는 이미 시들어가는 것을 사랑한다. 배우 지망생인 미아는 ‘연기’를 사랑한다. 연예인의 화려함과 같이 그녀는 꽃피는 것을 사랑한다. 단지 그녀는 스스로 꽃이 되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돌 뿐이다. 

 

결국 두 남녀는 현실 앞에서 꿈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들은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젊음들 역시 여기서 멈춰 선다. 하지만 정작 꿈을 내려 놓는 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가 되는 길이다. 꿈꾸는 것을 멈춘 주인공들은 길을 잃고 헤맨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 이들은 결국 서로에게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여주인공 이름인 미아(Mia)는 우리말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말한다. 물론 이는 그저 우연일 것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지금 어디쯤인지 묻는 미아(엠마 스톤)의 질문에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다. 그렇게 <라라랜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며 관객들에게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Where are we?”

 

 

사랑하는 것이 죽어가고 있거나 반대로 너무 화려해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대상은 그 대상을 향한 사랑이 멈추는 순간에 죽는다는 사실만이 분명하다. 멈추지 않는다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원하던 결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정 꿈꾸는 자에게는 기대를 벗어나는 결과조차 받아 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현실을 마법같은 곳, 즉 라라랜드로 만드는 일은 계속 꿈꾸는 자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결국 그들은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한것처럼 보인다. 비록 서로 다른 곳에 서있을 지라도 말이다. 재즈를 싫어한다는 미아를 세바스찬은 한 클럽으로 데려간다. 그곳의 이름은 ‘The Lighthouse Cafe’로 실제 LA 최초의 재즈 클럽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등대(light house)는 갈 길을 비춰줄 뿐 자신이 선 땅을 떠날 수 없다. 홀로 외로워도 상대가 길을 잃지 않는다면 아마도 행복할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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