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2.
솔직히 마블(MARVLE) 영화에 조금 지쳐가는 중이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시리즈를 필두로 화려한 볼거리, 감각적인 시나리오, 당대 최고의 배우들까지... 오락물의 모든 필수 조건를 갖춘 영화가 지겨워진다는 사실이야말로 마블이 개척한 영화 감상의 새로운 차원이 아닐까. 일찍이 이런 우주영웅대서사시를 스크린에서 보리라 상상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더 강렬한 자극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어벤져스>에서 이미 히어로물의 절정 같은 것을 맛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이후의 라인업에는 선뜻 눈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유독 기다려지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이하 가오갤2)>가 복고와 비뚤어진 B급 감성을 첨가하며 다시 수 많은 마블빠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니 이 역사적인 시리즈의 남은 여정에 뜨겁게 동참하리란 마음이 끓어오른다.
마블유니버스 영화라고 하기에는 매우 낯선 숫자지만 <가오갤1>의 국내 총 관객수는 간신히 백만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세계관을 우주까지 확장했지만 당시에는 무척 어색했던(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도 좀 어설펐던) <토르1>의 성적보다도 낮은 기록이니 당시 <가오갤>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은 지금에 비할 바가 못된다. 물론 2014년 개봉 당시 <명량>이라는 초유의 천만 영화가 경쟁작이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순 없지만 SF장르에 유독 미온한 국내 정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개봉 5일만에 전작의 기록을 갈아치우긴 했지만 이후 생각보다 주춤하는 <가오갤2>의 흥행 상황을 보아도 이러한 한국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히 유효한것처럼 보인다. 그 위대한 <스타워즈>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 한국의 극장가가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에이리언:커버넌트>가 한국에서 전세계 흥행 1위를 했다는 기사를 보면 알쏭달쏭한 생각이 든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SF를 가장한 납량특집 공포물이라고 본다면 일면 납득이 가기도 하지만, 역시 흥행에 절대적인 법칙이란 없는 법이다.
쓸데없이 긴 제목과는 달리 <가오갤2>는 시작부터 철저하게 관객들의 기대를 채워주는 영화다. 요즘 말로 특히 ‘취향 저격’인 오프닝 시퀀스부터 감독을 향한 격한 애정이 피어난다. <가오갤1>좀 보라고 목이 터저라 외치던 가오갤 빠들의 외로운 사자후는 이제 멈추어도 될 것 같다. 그냥 지금 극장으로 가면 된다. ‘그루트(빈 디젤)’와 ‘욘두(마이클 루커)’라는 빛나는 전작의 캐릭터들은 더욱 막중한 비중으로 영화 속에 녹아들었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사실상 시리즈의 여주인공격인 가모라(조 샐다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그 빈자리를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와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의 엉뚱한 로맨스가 넉넉하게 채워준다. 오히려 인간인 스타로드(크리스 프랫)의 연기가 어딘가 어색해 보일 정도로 이 기이한 외계생명체들의 조합은 자연스러운 동시에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제임스 건 감독이 처음 시리즈 연출을 맡을 당시의 우려들은 이제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시리즈 2편의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정확한 반증이다. 눈에 띄는 메이저 영화를 연출한 기록이 없는 신인감독에게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한 축을 맡긴 마블의 결단과 혜안이 가장 놀랍지만 <슈퍼(2010)>라는 감독의 전작도 상당히 놀랍다.
감독의 지난 행보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당시 <가오갤> 감독 내정에 불안을 감추지 않았지만, 만약 <슈퍼>를 봤다면 걱정보다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마블의 영화들과는 아주 다른 의미에서 ‘현실적인’ 히어로인 크림슨 볼트(레인 윌슨)의 모습은 ‘영웅심’과 실제 ‘영웅이 되는 것’의 괴리감을 유쾌하고 잔인하게 비꼰다. 연이은 대중적인 성공으로 단순히 B급이라 칭하기에는 민망하지만, 분명 B급스러운 하지만 동시에 고품격 감성의 소유자인 감독의 독특한 시선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특히 최근에는 상업영화에서 만나기 조금 어려운 그녀 ‘엘렌 페이지’의 반항아 연기를 보는 것도 일품이다.
히어로물은 결국 정형화된 서사의 반복이라는 한계를 감출 수 없다. 영웅이 고난 속에서 힘을 얻고 악을 퇴치한다는 줄거리는 이야기 그 자체의 역사 만큼이나 유례가 깊고 익숙하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유머로 가린다 해도 본질적으로 뻔한 반복 속에 관객들은 조금씩 지쳐가기 마련이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 만화보기를 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마블의 영화들은 결국 큰 범주에서 아주 세련된 ‘만화 영화’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그 만화적인 요소들이 보다 현실적인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블이 만든 영화를 보는 묘미다.
전체 시리즈의 절반을 넘어 슬슬 익숙함이란 악마가 깨어날 순간 <가오갤>은 이전에 없던 B급 감성과 함께 감초가 되어 주었다. 단순한 권선징악의 구도 너머를 추구한 과감한 마블의 전략은 옳았다. 선과 악의 뒤죽박죽 그 자체인 이 우주 해적단의 이름이 우주수호자(Gurdians of Galaxy)라는 것도 그 자체로 꽤나 탁월한 유머처럼 보인다. 영화를 본다면 파수꾼보다는 오히려 파괴왕에 가까워 보이는 아이러니한 씬들을 종종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간 뻔한 영웅들의 이야기에 지쳐 있었다면 이 뻔뻔하고 제멋대로인 녀석들의 활약상을 자신 있게 권한다. 이야기의 완결까지 남아있는 긴긴 기다림에 유쾌한 힘이 되어줄 것을 확신한다. TV로 <아이언맨> 시리즈만 계속 보기에는 아직 기다릴 시간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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