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다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보다가 지쳐 잠들었다.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이니 몰입도가 약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빠져들다가 나도 모르게 잠의 마수에 빠져버렸다.
지금 와서 되짚어보니 엄청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아름다우면서 충격적인 오프닝과 좋은 음악이 시작부터 사로잡고 무엇보다 연기가 훌륭한 배우들이 나온다.
미셸 윌리엄스의 미와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세스 로건은 그의 필모 중 코미디를 뺀다면 가장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짝퉁 제임스 프랭코 같은 얼굴로 등장해 제법 섹스어필하는 남성을 보여준 루크 커비는
당연 그의 모든 출연작 중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최고일것이다.
단 하나의 문제는 제목이 던지는 미련한 질문이다.
달콤한 맛을 상상하며 씹었는데 안에서는 비릿한 술맛이 흘러나오는 속은 치명적이고 겉은 순둥순둥한 매력적인 초콜렛같은 이 영화를 제목이 망쳐버렸다. 이런 드라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제목을 떠올리며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블루발렌타인>, <연애의온도>, <레볼루셔너리로드>같은 영화들이 샤샤샤 지나가고 미쳐 끝까지 보기도 전에 뇌가 지쳐버릴것이다.
결국 문제는 너무 친절하게 잘 지은(번역한) 제목이다.
왈츠는 사교의 춤이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축하할때 추는 춤이다.
주제가 불륜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본래 제목인 <Take This Waltz>는 그래서 함축적이며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우리도 사랑일까? 우리도 사랑일까라니!
이렇게 던져 놓고 제대로 답을 내리지도 않고 흐지부지 끝낼거라는 걸 요즘 관객들은 다 안다.
물론 이 영화가 그리 요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건 예/아니오로 끝나지 않고 거기부터 시작하는 질문이 아닌가.
우리의 마고는 이 왈츠를 거부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선 칼춤이 될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영화는 그 흔들림의 순간들에 집중한다. 그것이 연출이고 작품의 의도인 것은 당연하지만 다만 조금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실제로 결혼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 흔들림과 유혹 속에서 살아가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때론 그것이 치명적이지만 대부분은 그저 작은 해프닝 혹은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일상이라는 것도...
인간의 일부일처제는 우리 안에서 생각보다 윤리적으로 잘 작동한다.
물론 영화니까 아닌 경우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더 묵직한 질문이긴 하다.
대부분은 마고와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더불어 마고가 대니얼에게 가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그녀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그 실수는 일상적이고 흔하고 반복적이기에 사람들은 연민을 느끼고 때때로 공감하니까. 그때부터 실수는 더 이상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나는 불륜이라서 무조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결혼이라는 결합은 뭐랄까 각각 그들만의 우주가 있다고 해야하나. 사랑을 걷어내고도 따질일들이 참 많다. 사랑은 길게 충만할 수도 있고 짧게 빛날 수도 있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쓰다보니 마고를 변호하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교훈은 이왕하는 불륜이라면 잘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 할 사람들 모두에 대한 예의일테니...
사랑은 때때로 게임과 같다.
시쳇말로 승자와 패자가 있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게임은 참여하는 순간 누군가는 루저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매너게임'을 외친다.
그것이 패배를 생각하지 않고 그 위험한 춤판에 뛰어든 모든 참가자들을 위한 최선의 마음이란 것을 알기에...
질문은 그만 던지는 것이 좋겠다. 이번 판이 나가리면 다음 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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