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는 일을 업으로 삼다가 한국을 떠나며 손 놓고 있었는데 이 작고 착한 영화를 보며 참 오랜만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재미를 떠나서 영화를 보니 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눈에 들어와 조금 신기방기.
실제로도 영화 <플로렌스>는 메릴 스트립, 휴 그랜트, 사이몬 헬버그 세배우의 호연에 엄청 빚진 영화다.
연출이 없는 듯한 연출을 이제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버린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도 이 각본은 배우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특히 <빅뱅 이론>의 쪼따 하워드보다 더 성공적인 소심남 캐릭터를 선보인 사이몬 헬버그의 연기에 제일 깜놀! 또한 메릴 스트립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무수히 많은 영화 중 하나일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플로렌스>는 아무런 정보와 기대없이 본 영화다.
출국하기 전 개봉했다는 소식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영화가 한국에서 얼만큼 사랑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미 영화를 본 감상으로 말미암는다면 이 영화는 한국에서 분명 망했을것이다.
첫째. 액션이 없는 시대극이며
둘째. 착한 사랑과 착한(?) 불륜만 있다
셋째. 음악 그중에서도 성악과 클래식이 주제이고
넷째. 제목에서 어떠한 궁금함도 들지 않는다
다섯째. 실제인물을 너무 영화에 맞춰 각색하다보니 플룻도 좀 구리다.
이유를 들라면 열개도 더 댈 수 있을듯하지만, 내심 플로렌스가 한국에서 잘되었으면 좋겠다.
얼핏 "돈이면 다 된다"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플로렌스는 오늘만 살았던 사람의 실화이기 때문이다.
플로렌스는 자신의 두려움과 용기 양쪽 모두 감추지 않는다.
그녀는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숨기지 않는다.
직관을 믿고, 공유하기를 좋아하며 외롭지만 그 외로움을 단단하게 인내하는 인물이다.
주변인물들이 그려주는 가짜와 진짜의 경계에서 때때로 어리숙해 보이지만,
그녀는 예술가보다는 예술 그 자체를 후원하는 사람일뿐이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그녀는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3명의 주인공 플로렌스와 베이필드, 맥문은 모두 멍청한 사람들이지만
"맹하게 꿈을 쫓는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괜찮다"는 구시대적인 교훈을 제법 유치하지 않게 전달한다.
나는 그들이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믿었던 약간 촌스러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플로렌스는 노래를
베이필드는 연기를
맥문은 피아노를 꿈꿨고
결국 그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던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웃음 거리가 된다해도 스스로를 명예롭게 여길 줄 알았고 남보다는 자신의 목소리에 더 집중했다.
주위의 시선과 빠쁜 말들에 익숙했던 나는 요즘 한적한 호주 구석에 앉아 목적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 와서야 영화보는 일이 더 즐거운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잘하는일과 좋아하는일 하고싶은일과 해야하는일들이 내안에서 어지럽던 때에 비하면 조금 평화로운 것도 사실이다.
어젯밤 여기는 무섭게 비가 내렸다.
허름하지만 단단한 4WD를 한대 사서 덜컹거리는 사막의 도로를 달리다 이런 비를 만난다면 나는 정말이지 겁에질려 벌벌 떨거같다.
하지만 동시에 그 순간이 기다려지면서 나를 꿈꾸게 한다.
도시적인 걱정보다는 원시적인 두려움이 끌리는 중이다.
고마워요 플로렌스, 주저 없이 꿈을 선택하고 돈 쓰는 법은 제법 알았던 훌륭한 당신의 인생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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