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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다이어트 프로젝트, 옥자

특별한 장면/영화 보다

by 5eadme 2018. 3. 3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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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스틸컷

 

2017. 7. 3.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새로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으레 감독의 명성을 따라가기에 이 왕돼지이야기가 제작당시부터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살인의 추억>, <괴물>과 같은 걸작을 비롯해 <설국열차>로 첫 해외진출까지 성공리에 마친 그는 이미 대한민국 감독 중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의 후속작이 처음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다는 소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더니, 이후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제이크 질렌할 등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합류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설명을 듣고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줄거리와 컨셉, 신인 아닌 신인배우 안서현(미자 역)의 주연 캐스팅은 <옥자>에 대한 관심을 준비단계부터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물론 영화의 많은 분량이 해외 촬영이었다는 점에서 이따금 현장 스케치를 접하는 것으로 영화팬들은 만족해야만 했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 갔고, 미국식 햄버거를 맛있게 즐기셨는지 부쩍 살이 오른 봉준호 감독의 외모를 보며 감독 본인이 사실은 옥자인 것 같다는 네티즌들의 추측이 그럴싸하게 들려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하니 당시에는 마지막으로 한창 고기를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베일에 가려진 채 영화는 기대를 한층 끌어올렸고, 완성된 후에는 칸영화제 출품 및 상영 불가 이슈가 불거지며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옥자>는 대형극장체인과 뉴미디어그룹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자리 싸움의 상징적인 작품이 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부분에서 만큼은 이미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보아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사전에 극도로 끓어올랐던 기대와는 달리 공개된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조금 갈라지는 듯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옥자>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사전정보 없이 이야기를 쫓아가기에 벅차거나 엄청나게 빠른 전개로 관객들의 숨을 헐떡거리게 하기 때문은 아니다. 극장 개봉 여부에 대한 논란이 무색할 만큼 <옥자>는 단단한 영화의 형태와 질감을 갖추었다. 다만 여기에는 조금 더 길게 설명되었다면 좋았을 떡밥들이 은연 중에 감춰져 있고, 다양한 플룻으로 잘 훈련된 관객들은 그 빈자리의 어색함을 놓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으로 열연한 쌍둥이 ‘루시 미란도’와 ‘낸시 미란도’ 사이에 흐르는 갈등 및 아버지와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궁금함을 만들어 내고,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멋지게 연기한 ‘프랭크’는 아직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분위기를 끊임없이 풍긴다. 특히 <옥자>에서 단연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죠니’ 역의 제이크 질렌할은 오히려 자신의 캐릭터에 너무 충실했던 나머지 영화에서는 보여지지 않는 그의 뒷이야기들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영화 속에서 모든 배경이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캐릭터의 매력 속으로 손짓하는 <옥자>의 경우 풀리지 않는 아쉬움이 유독 짙게 남는다. 결국 <옥자>란 영화는 장면 속 말을 빌려 ‘슈퍼 피그 페스티벌’이라고 부르는 것 보다는 한 동물을 둘러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간의 매력 경연대회’라고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렇듯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들로 인해 누군가 영화의 불친절함을 토로하거나 그로 인해 지루함을 느낀다 해도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는 이미 120분의 길이를 가졌고, 2시간도 충분히 긴 시간이기에 듀레이션이 늘어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내용이 스페셜 시즌 미드처럼 1시간짜리 3부작의 구성으로 만들어졌다면 좀 더 큰 울림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다면 넷플렉스와도 더욱 잘 어울리고 칸영화제 논란같은 해프닝도 없었을 것이라는 작고 편리한 생각도 들지만 이 거대한 협업 프로젝트를 완성해 낸 것만으로도 새삼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 감탄하게 된다. 어두운 이야기를 밝게 전달하는 <옥자>의 엔딩 크레딧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은 봉준호 감독이 아주 좋은 환경에서 과히 훌륭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즐겁게 작업한 작품이라는 인상이었다.

 

개봉 전부터 여러가지 화제를 몰고왔던 <옥자>는 결론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후에는 어떤 다른 이야기 보다도 채식 권장 성인 동화로 읽혀지고 있다. 영화를 보는 눈과 마음은 모두 다르기에 우리는 각자의 해석을 하지만 충격적인 마지막 도살장 장면에서 만큼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육가공 공장의 천국인 호주에서도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사람들은 죽음의 흔적이 지워지고 깨끗하게 포장된 이 상품들을 손쉽게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우리가 고기를 구입할 때 상상하는 그림은 드넓은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행복한 동물의 모습이지 피의 강이 흐르는 도살장은 아니다. 불편한 것들은 쉽게 잊기 마련이다. 옥자가 살아 나온 그 지옥에도 또 다른 슈퍼 돼지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과 옥자가 무엇이 다른가 묻는다면 누구라도 선뜻 답하기 힘들 것이다. 그저 옥자의 옆에는 미자가 있었다는 외적인 차이일 뿐이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질문이 어려운 것은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사람뿐이라는 역설적인 상황때문이다. 닭백숙과 매운탕은 좋아하지만 옥자는 살리고 싶은 미자의 마음도 우리 안의 위선을 되돌아 보게 한다. 육식을 하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채식을 하는 것은 강한 의지와 자기 안의 신념이 필요한 행위이다. 모두가 자발적 채식주의자가 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기에 <옥자>는 우리가 이유 있는 육식주의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아닐까. 먹지 않을 동물은 사냥하지 않는 야생의 지배자들처럼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도 똑똑한 육식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이 엄청 끝내줘야지!

And most importantly, they need to taste fucking good!

 

- 루시 미란도 - 

 

영화 속에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토마토조차 거부하던 ALF단원처럼 될 필요는 없다. 아무 생각없이 먹는 것보다는 조금씩 동물의 복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편이 어떨까. <옥자>를 본 날이라면 삼겹살을 자제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심지어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래, 하루만 참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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