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신작 소식이 잠잠하다. 지난 2015년 브라질 리오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역동적인 소년물 <트래쉬> 이후 햇수로 3년째. 항상 느리게 걷는 그의 필모를 생각하면 딱히 어색하진 않다. 아역 캐스팅과 연출의 귀재인 그가 지난 <트래쉬>의 주인공 오디션에만 1년을 공들였다는 사실을 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보석같은 아이들을 찾아다닐지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대표작인 <빌리 엘리어트>는 몰입도가 높지 않은 영화였다. 바로 그 거리두기와 낙후된 탄광촌의 잿빛이 만나 특별한 성장드라마로 탄생했지만 자주 찾는 작품은 아니다. 그의 영화 중 <디 아워스>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가진 파워풀한 흡입력이 개인적인 취향과는 더 가깝다.
<트래쉬>는 기존의 작품들보다 무게감이 훨씬 덜 하다. 다루고 있는 사건 자체는 가장 심각하지만, 넘쳐 흐르는 세 아역 배우의 에너지가 시종일관 영화에 동력을 불어 넣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를 위해 수개월간 파쿠르를 훈련했다는 아이들의 몸놀림은 당신을 리우데자네이루 뒷골목으로 순식간에 끌어당긴다. 버려진 폐허와 하수도, 빈민촌 사이를 피가 흐르듯 질주하는 소년들의 꿈틀거림은 그 자체로 감독이 추구하는 희망의 근원처럼 그려진다.
베스트셀러 원작을 각색한 장본인이 '리차드 커티스'라는 사실은 무거운 음모의 이면에 깔린 따스한 시선이 어디서 왔는지 잘 설명해준다. <어바웃 타임>, <러브 액츄얼리>의 각본을 쓰기도 했던 그는 이 피빛 사건 위에 잔혹함을 희석시킬 얇은 베일을 덮어 주었다. 사람이 죽고 고문당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의 깊은 눈동자는 결코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그거야 이게 옳은 일이니까요.
-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묻는 루니 마라의 질문에 답하며
범죄의 배후와 정치적 음모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사건의 전개는 직선적이다. 캐릭터는 단층적이고,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식을 말함에 있어서도 주저함이 없다. 누군가는 그 뻔뻔함을 깊이가 없다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유아적인 정의관이 미덕이다. 나쁜짓을 하는 사람은 벌을 받는다. 이 단순한 진실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얻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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