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과 높은 기대는 언제나 감상의 적이다. 알면서도 바보짓을 반복하는 내가 제일 문제지만, 정작 오늘 감상의 가장 큰 적은 쉬지 않고 울리는 나의 핸드폰이었다. 알찬 진동 덕에 극 초반부터 집중을 포기하고 반쯤 넋나간 표정으로 한결 마음 편하게 봤다. "까짓거 그래 좋으면 또 보지 뭐" 라고 생각하며...
불행 중 다행인것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편애하다시피 #고레에다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번 감상에서는 그 짝사랑을 살짝 의심하면서 오랜 애정 밑에 감춰진 얇은 충성심을 들킨 마음이었다.
가족의 의미에 대한 반복적인 성찰이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토록 아프고 지친 인간군상들의 현실을 웃픈 동화처럼 받아들이기에는 내 속이 너무 쓰리다. 동화같은 이야기 속에 감춰진 칼날같은 날카로움이 그의 영화다움이라 느껴왔다면 이번에는 칼날같은 현실 속에서 억지 동화를 꺼내보인 모습이다.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 내 졸렬한 감상을 덧붙이는 자체가 좀 민폐지만... 기대치가 항상 150점인데 이번에는 99점 정도였다고 치면 딱 알맞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영화의 하위 장르로서 '가족'을 설명한다면 고레에다 감독은 단연코 가장 많은 페이지를 부여 받을 것이다. 이번에도 귀신같은 아역 캐스팅은 여지없이 빛을 발하고, 필요없는 장면은 단 한 순간도 허락하지 않는 그의 예리한 연출은 빈틈없다. 특히 엄마(?)역을 맡은 #안도사쿠라 의 진술 장면은 명대사와 아름다운 연기의 향연으로 오래도록 잊기 어려울 것이다.
버린 게 아니라 주워온 거예요.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닌가요?
#원더풀라이프 때문인지 종종 그의 바스트샷은 나에게 인물의 영정사진을 훔쳐보는 듯한 기시감을 선사하는데, 그녀의 훌륭한 연기와 만나 이번에도 뇌리에 선명한 인장을 남긴다.
뭐야 이거.... 쓰다보니 또 마음이 달라졌다... 제길, 사랑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훌륭한 배우의 눈을 보는 즐거움 <마녀> (0) | 2018.08.18 |
---|---|
<델타 보이즈> 멋 없는 청춘들의 인실ㅈ (0) | 2018.08.03 |
먹을 거 없이 흥하는 잔치 <오션스 8> (0) | 2018.06.15 |
동심의 마술사 스티븐 달드리의 정의론 <트래쉬> (0) | 2018.04.29 |
액션 거장들의 유쾌한 장르 비틀기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 (0) | 2018.04.24 |